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드웨이 해전 (문단 편집) ==== 미 뇌격기 부대의 축차공격과 전멸 ==== 9시 20분부터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미 해군의 3개의 뇌격기대대가 순차적으로 일본 함대를 공격했으나 일본군에게 거의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못한 채 10시 40분경 극소수의 잔존기만 남기고 전멸하고 말았다. 09시 20분에 제8뇌격기대대가, 09시 37분에 제6뇌격기대대가, 10시 10분에 제3뇌격기대대가 뇌격을 개시했다. 각 뇌격기대대의 공격시간은 약 30분이었다. 따라서 제8뇌격기대대가 전멸하기 전에 제6뇌격기대대가 공격을 시작했으며, 제6뇌격기대대가 공격을 마친지 몇분후에 제3뇌격기대대의 뇌격이 시작되었다. 미 뇌격기부대의 실패 요인은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 '''축차공격''' 3개의 뇌격기대대가 순차적으로 공격한 것은 전혀 의도했던 바가 아니며, 앞선 단락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대규모 해전에 대한 실전 경험 부족과 지휘관과 부대원들의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삽질의 결과물이다. 전술 미스로 인한 의도치 않은 축차공격이 뇌격기대대의 전멸을 야기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 '''전투기부대 호위의 부재''' 또 뇌격기부대를 운용함에 있어 저고도까지 침투하여 어뢰를 발사해야 하는 뇌격기 주변을 전투기부대의 호위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윗 단락에 나와 있는 일련의 삽질들로 인해 3개의 뇌격기대대 가운데 2개의 뇌격기대대가 전투기대대의 호위를 받지 못한채 단독으로 뇌격에 임했으며, 결국 일본의 베테랑 조종사들이 모는 제로센에 의해 손쉽게 격추되고 말았다. * '''어뢰 성능 불량''' 2차 세계대전 당시 [[어뢰 스캔들|미군 어뢰의 성능과 신뢰성에는 항공어뢰든, 중어뢰든 상관없이 큰 문제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항공기에 의한 대함 뇌격은 적 전투기와 대공포화에 노출되기 쉬운 전술이다. 여기에 당시 미군 어뢰의 극악한 신뢰성으로 인한 까다로운 투하조건과 당시 미군 주력 뇌격기였던 [[TBD 데버스테이터]]의 저성능[* 이미 [[TBF(M) 어벤저|후계기]]가 준비되어 있을 정도로 노후된데다, 같은 시기 [[B5N|일본군 함재 뇌격기]]와 비교해도 그 성능상 열세는 명백하다.]이 겹치면서 미군 뇌격기들은 전술적으로 굉장히 불리한 조건에 놓였고, 결국 대다수의 미군 뇌격기들은 어뢰 투하조차 못하고 격추당했다. 전투기의 호위가 붙었던 요크타운의 제3뇌격기대대를 비롯하여 소수의 뇌격기들이 어뢰를 발사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미 전투기들에게 난타당해서 공격대형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산발적으로 투하된데다, 투하하자마자 항주장치나 뇌관이 먹통이 되곤 하면서 결국 한 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 '''전술 미스 및 부대원들간의 갈등''' 일본군도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미군 역시 이처럼 역사상 그 유래가 없었던 대규모 항모전에 대한 실전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각 비행대 발진에서부터 전술적 삽질을 거듭했고 이는 축차공격 및 전투기 호위 부재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더해 호넷 비행대 지휘관 링 중령과 부대원들 간의 갈등으로 비행대가 와해된 것은 호넷 뇌격기대대 전멸의 중요한 한 원인이 되었다. 추가로, 일본군도 이 파상공격에 대해서 악착같이 대처했는데, 조함을 잘하는것으로 유명하던 나구모 주이치 제독이 아카기의 함장을 밀어내고 자신이 대신 회피기동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 吉田俊雄 『指揮官と参謀』光人社NF文庫、2007年(平成19年)。ISBN 978-4-7698-2023-9 p.119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